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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송가황조..

酒有所 2015. 7. 5. 23:24



송자매..


송애령, 송경령, 송미령..

중국 근대사에서 이 세자매 만큼 유명한 사람 없을겁니다..


감리교파 목사에 신식문물 접한 아버지 송가수 덕분에 세자매 풍족한 환경속에서 최상위급의 교육을 받을수 있었습니다..


돈을 사랑한 여인..

나라를 사랑한 여인..

권력을 사랑한 여인..


보통, 이 세사람을 평가할때 그렇게들 말하더군요!!


한배에서 나고, 같이 자란 자매지간임에도 커서는 정치지향점이 너무 달라서 친자매 맞나 싶기도 하고 그랬을겁니다..


중국최초로 미국으로 유학간 여성이 송씨 집안의 첫째..

송애령입니다..


송애령의 남편 공상희는 당시 재정관료에 은행총재를 지냈으며 중국 최대 부호였습니다..

그렇기에 자신 또한 그 지위를 이용해서 엄청난 부를 축척합니다..

그 부를 축척하는데 부패가 없을수 없겠지요?!



49세와 22세

손문과 송경령의 나이입니다..


아버지 송가수의 입장에서 보면 미칠 노릇입니다..

자기 동지이자 친구인 손문이 자기 딸과 결혼하겠다고 ..


더군다나 아내가 있는 상태인데도 말입니다..


자식이기는 부모 없다고 하던가요.. 결혼을 강행합니다..


반제국주의와 삼민주의를 주창한 남편 쑨원의 유지를 이어받아 국민당 정부와 등을 지고 

중화인민공화국건설에 합류합니다.


이후 중국에서 부주석자리까지 올랐고, 여성의 민권과 사회복지활동에 헌신했다고 합니다..



셋째 송미령은 대만으로 쫓겨난 국민당정부의 장개석 총통과 결혼합니다..


나쁘게 보는쪽은 지나치게 권력욕에 사로잡힌 여자라고 폄하도 하고 그러더군요..


다른편에서는 송미령을 당시 대만과 미국 양자간의 중요한 가교 역할을 했다는 평도 많습니다..

장개석의 아내가 아니라 국민당 정부의 외교자로서 장개석 못지않게 대만이 외교적 수세에 몰리지 않게 

유능한 외교정책을 폈었다는 점에서 좋은쪽으로 보는가 봅니다..




1949년 이후 사망할때까지 송경령과 송미령은 만난적이 없다고 합니다..


중국에서 대만에서 국모로 추앙받는 두 여인네..


친자매에서 정치노선이 전혀 다른길을 걷고 그 외교적인 수완에 남편의 조력자가 아닌 자신이 주체가 되어 

주도적으로 나가는 모습은 당시 시대에서는 대단한 일임에 분명할겁니다..



그걸 영화로 만든게 이 영화입니다..

저도 보지는 못했지만, 볼만할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