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사의 날은 1456년 6월 1일로 잡혀졌다.
정인지·신숙주·한명회 등은 한 해 전인 1455년 윤 6월 단종을 왕위에서 물러나게 한 뒤 수양대군을 왕으로 추대했다.
6월 1일 창덕궁에서 명나라 사신 초대연을 열기로 결정 나자 이날 유응부와 성승이 연회석상에서 칼을 차고 임금을
지키는 별운검(別雲劒)을 맡아 세조를 살해키로 의견을 모았다.
불행히도 거사 당일 세조는 갑자기 건물 안이 좁다며 칼을 차지 못하도록 명하면서 난관에 처하게 된다
유응부는 이번 기회밖에 없다고 생각하고 감행하려 했고, 성삼문, 박팽년은 뒷날을 도모하자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공모자중 한사람인 김질이 장인 정창손에게 달려가 일러 바치고 정창손을 통해
세조는 그 사실을 알게 됩니다.
유응부가 그랬다고 합니다.
책만 읽는 서생들과 일을 도모하다니...
자신의 실책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더 묻고 싶은 말이 있으면 저 선비들한테 물어보라고..
(무신과 문신의 차이였을겁니다)
아시겠지만, 반역죄로 몰리면 삼족을 멸합니다.
남자들은 죽임을 당하는경우가 많고 여자들은 노비로 팔려 갑니다.
정변을 막은 공로의 대상자에게 역모에 가담한 관료들의 재산과 노비는 물론
처첩, 딸을 노리개로 잡아갑니다.
남편들은 역사의 한페이지를 장식하는 충신으로 기억되지만,
그 여성들은 치욕속에서 죽지 못해 살아가야 했을겁니다.
어진..
1954년까지는 존재했지만 화재로 사라져 버렸다.
창덕궁 선원전(어진을 모시던 건물)에 보관된 다른 어진들과 함께 한국전쟁을 피해 부산국악원으로 옮겨졌다가
1954년 12월 발생한 화재로 소실돼 버렸다
서울옥션측은 조선 최후의 어진(御眞)화가인 이당 김은호(1892~1979년)가 영조 때 그려진
세조 어진을 이당이 보고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작품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인정사정 볼것 없는 잔인한 인간인 세조가 날카로울것 같은 예상과 달리
후덕한 인상을 주는건 의외일겁니다.
하기사, 사이코패스도 멀쩡하게 생긴 사람들이 많다고 하니...
사족 하나 더 달면
이당 김은호씨와 제자들의 친일행적 때문에 그 사람들이 그리거나 만든 독립유공자나 선인들의 작품들을
전면 재고 해야 한다고 해서 크게 이슈화 되었습니다.
친일파가 독립유공자 영정을 그리고 그 작품이 독립기념관등에 걸쳐 있는 우스운 나라입니다.
내용 부분 출처; http://mzine.mk.co.kr/v2/?TM=M3&RC=3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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