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평생 독신이었다.
한 여성에게 마음이 끌리긴 했으나 사랑한다는 말을 머뭇거리고 있는 사이에 이 여인이 떠나가버린 것이 칸트의 여인 편력의 전부다.
여름 겨울 할 것 없이 아침에 일어나는 시간은 5시 정각이다. 서재에 들어가 차 두 잔과 담배 한 대로 아침을 때우고 7시에서 9시까지 강의를 한다.
오후 1시에 하루 한 끼의 오찬을 드는데 이 자리에는 매일 선택적으로 네댓 명이 초청된다. 학자나 제자뿐 아니라 목사·의사·은행가·상인 등 다양하며, 화제도 철학에서 과학·시사·여염의 가정문제에까지 이른다. 맥주는 평생 입에 댄 적이 없고 와인 한 잔이 고작이다.
시사문제에 대한 소신도 확고했다. 미국 독립전쟁 때 칸트가 독립파를 지지하며 영국을 비난하자 손님 가운데 하나가 반론을 제기, 언쟁이 격해져 칼을 뽑아든 결투 직전에까지 이른 일이 있었다.
그는 평생 쾨니히스베르크를 떠난 적이 없었는데 외지의 일을 가 본 사람보다 더 많이 알았다. 이를테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다리의 모양·구조·폭·길이 할 것 없이 세부조각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었고, 60세 넘어서는 화학에 몰두해 세계적 화학자 아겐의 오류를 지적하기도 했다.
오후의 그 한 끼 식사 후 산책을 하는데 속도나 통과시각이 일정하여 몇 시 몇 분에 정해진 지점을 정확하게 통과했기로 산책길에 사는 사람들이 칸트만 보고 시각을 가늠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산책 중 사색에 열중한 나머지 꽃가게의 꽃바구니를 말수레 위에 얹어놓고 가기도 했다. 그러는가 하면 관찰력이 예민하여 집에 돌아와 그 전날과 달라진 자연의 미세한 변화를 달력에 적어놓곤 했다.
이를테면 어느 지점 길가의 민들레가 노란 꽃빛을 더한 걸 보니 날씨가 추워질 조짐이라거나 어제 세 번 감겼던 포도 덩굴이 오늘 다섯 번 감겼다는 등―.
칸트의 200주기(周忌)를 맞아 국내외에서 학술행사들이 준비되고 있는 가운데 쾨니히스베르크로 칸트 생활을 체험하려는 사람이 몰려들고 있다 하여 편리만을 추구하고 가속화하는 데 대한 칸트의 선각적인 반문명의 일상을 더듬어보았다.
입력 : 2004.02.25 19:48 58'
이규태 코너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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