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테미시아의 작품입니다. 아버지의 친구이자 스승인 타시에게 강간을 당하고 그 그림의 주인공을 홀로페르네스의 모습으로 자신은 유디트의 모습으로 그렸다는 설이 있습니다.
아르테미시아의 생애를 찾아 읽어보면 참 인생 파란만장하다고 느낄겁니다.
사투르누스'는 '크로노스'로 잘 알려진 시간의 신이다.
하늘의 신 우라노스와 대지의 여신 가이아의 아들. 그는 낫으로 아버지 우라노스의 성기를 거세하여 바다에 던졌다. 그리고 누이인 레아를 아내로 맞았다. 부친을 살해했다는 죄의식과 자신 역시 자식들에게 살해당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늘 두려웠다. 그래서 자식을 낳는 족족 삼켜버렸다.
고야는 이성이 잠들면 광기가 출몰한다고 경고했다. 그의 예술적 상상력은 그로부터 시작된다. 계몽주의자다운 발상이다.
이 작품은 정치적 은유를 가진다. 크로노스는 '봉건주의'를 제우스는 '시민혁명'을 의미하는 듯하다. 격변과 우울의 시대 중심에 있었던 이 연약한 예술가의 눈에 비친 권력의 모습은 이토록 생동감 넘치는 야만의 모습이 었던것 같다.
죽음의 경계를 넘나드는 표류 상황을 그린 대표적인 화가는 테오도르 제리코(Theodore Gericault, 1791~1824)이다.
제리코는 <말의 해부학>을 쓸 정도로 말에 대한 관심이 대단했으며, 실제로 그는 훌륭한 승마가(乘馬家)이기도 하였다. 33세라는 젊은 나이에 요절하게 된 이유도 연속된 낙마(落馬) 사고로 인한 상처와 합병증 때문이었다.
1816년 망명 귀족 출신인 뒤루아 드 쇼마레가 지휘하던 왕실 해군 소속 메두사호가 서아프리카 세네갈로 항해하던 중 풍랑(암초?)을 만나 배가 난파되었다. 당시 배에는 프랑스 군인들과 이주민들이 타고 있었다.
하지만 구명보트가 얼마 없어 승선자 149명은 뗏목에 탔어야만 했었다. 그러나 뗏목에 연결된 보트에 타고 있던 선장은 자신의 안전만 생각해 뗏목과 연결된 밧줄을 끊고 도망갔다.
육지에 도착한 15명의 생존자 중 5명은 도착하자마자 죽었다. 글로 발표함으로서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생존자들에 따르면 난파된 지 이틀 만에 폭동이 일어났고 셋째 날에는 배고픔에 죽은 동료의 시체를 먹기까지 했다고 한다. 메두사호의 책임자로 위임한 사실에 대해 책임져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었다. 광란에 빠진 사람들을 표현하고자 이 작품을 제작한다.
그림책을 조금씩 보고 있는데 극사실주의 풍의 그림이 좋습니다.(조셉라이트 같은)
어떤 작품이 유명하다고 해서 그냥 봤었는데 다시 그림책과 인터넷 웹 사이트 디져가면서 내용과 그 당시 시대상황을 비교해서 보니 너무 재밌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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