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성난 고갱과 슬픈 고흐..

酒有所 2013. 7. 14. 13:12



두 사람의 성격을 비교하면 물과 불 같아 도저히 화해할 수 없는 기질들이다. 

고갱은 인습타파주의자였으며, 빈정거리는 말을 했고, 냉소적이었으며, 궤변을 일삼았고, 무심한 
면이 있었다. 

반면 빈센트에게는 북유럽 사람의 기질인 거친 면이 있었으며, 천성이 열심히 노력하는 기질이었고, 
동료에게 격정적인 애정을 쏟는 불같은 사람이었다. 

반자연주의적인 그림을 주로 그린 두 사람은 지성이나 관망한 사물로부터가 아니라 개인적 감성에 
기초해서 그렸다. 




빈센트와 고갱은 1888년 12월 아를의 노란집 아틀리에에서 각각 자화상을 그렸다. 
두 사람 모두 샤를 라발에게 주기 위해 자화상을 그렸다.18, 19 
그러나 고갱은 나중에 외젠 카리에에게 주었다. 
라발은 1888년 11월 1일경에 그린 자신의 자화상을 빈센트에 주었다.277 
당시 고갱은 마흔 살이고 빈센트는 서른다섯 살이었던 두 사람의 자화상에서 그들의 마음상태가 편치 않음을 볼 수 있다. 
두 사람은 창작에 있어 서로를 라이벌로 인식했고 이런 점에서 서로 존경하면서도 시기했다.


1888년 12월 1일, 두 사람은 노란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서로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다. 
빈센트는 테오에게 고갱이 자신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며 쓸 데 없는 짓이라고 썼다. 



고갱은 해바라기를 그리는 빈센트의 모습을 그렸다.20 
고갱은 “빈센트가 아끼는 주제인 해바라기 정물을 그리는 모습을 그려보자는 생각이 우연히 떠올라” 그 모습을 그렸다. 

의자 위에 다섯 송이의 해바라기가 있는 화병을 올려놓고 그리는 빈센트를 옆에서 본 모습으로 그렸다. 
빈센트는 이런 의자를 열두 개 갖고 있었다. 

벽에는 고갱의 풍경화가 보인다. 


이 작품에서 빈센트는 눈을 반쯤 감고 해바라기를 바라보면서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를 궁리하고 있다. 
고갱은 빈센트를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으로 그렸는데 그는 평소에도 빈센트를 자신보다 못한 존재로 
내려다보았으며 빈센트는 이를 매우 불만스럽게 생각했다. 

위에서 내려다본 모습이라서 빈센트의 이마와 코가 낮게 묘사되었고 얼굴이 평편해졌으며, 배경의 노란색 
때문에 들어 올린 오른팔이 움츠러들어 보인다. 

이 그의 드로잉21을 보더라도 빈센트의 이마와 턱이 일그러져 보인다. 
완성된 초상화를 보고 빈센트는 “나긴 난데 어쩐지 제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했다. 


이날 빈센트도 고갱의 초상을 하루 만에 그렸는데 빈센트는 붉은색 베레모를 쓰고 작업에 여념이 없는 
고갱을 뒤에서 바라본 옆모습으로 묘사했다.22 

오른쪽 어깨가 약간 올라가 있어 오른손으로 붓질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캔버스는 주로 노란색이며 아래 오른쪽에 오렌지색이 조금 보인다. 

빈센트는 과거에 이런 각도에서 바라본 인물을 그린 적이 없었다. 

아마 고갱이 자신의 모습을 옆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그린 데서 영향을 받았거나 고갱의 옆모습을 담은 
사진에서 아이디어를 구한 것으로 짐작된다. 그는 고갱의 초상에 관해 언급하지 않았고 거의 일 년이 
지난 후 그의 초상을 다시 그리고 싶다고 말했다. 


반 고흐는 12월에 지누 부인의 초상을 다시 그렸습니다. 
그는 고갱의 방법으로 초상을 그리면서 배경에 자신이 좋아하는 레몬 노란색을 사용했다. 

반 고흐가 처음 그린 지누 부인의 초상에 비해 두 번째 것 <책 앞의 지누 부인 Madame Ginoux with Books>
은 좀 더 사려 깊게 채색되었으며 색과 선에서 긴장감을 느낄 수 있다. 

고갱이 같은 달에 그린 어머니의 초상화 <알린 고갱의 초상 Portrait of Aline Gauguin>을 보면 노란색을 
넓고 평편하게 사용했는데, 반 고흐의 영향이다. 

그는 1867년 7월에 타계한 어머니를 사진을 토대로 젊은 모습을 그리면서 반 고흐가 즐겨 사용하는 노란 
색을 배경에 칠해 어머니가 이국적인 모습이 되게 했다. 

반 고흐가 물감을 두텁게 칠한 데 비해 고갱이 물감을 엷게 썼음을 볼 수 있다.

    
고갱의 지누부인..


고흐의 지누부인..

12월 들어 반 고흐와 고갱 사이에 논쟁이 부쩍 격해졌는데 이는 고갱의 강압적인 태도에 대한 반 고흐의 
반발이 다분히 작용한 것이다. 

그동안 반 고흐는 주제와 구성에서 고갱의 강압적 영향을 받고 있었다. 

꿈의 이미지를 그리라는 고갱의 주문에 응하며, 두 번째 그린 지누 부인의 초상이 고갱의 <아를의 밤 카페 
Night Cafe at Arles>와 같아 그때까지 고갱의 영향 하에 있었음을 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이한 점은 고갱은 뒤로 세 명의 매춘부를 배경으로 지누 부인을 포주로 묘사한 데 
반해 반 고흐가 지누 부인의 존엄성을 나타내주려고 한 것이다. 

그런 점이 그가 테이블 위 소품으로 사용한 책, 파라솔, 그리고 장갑에서 확인된다. 
인간에 대한 존엄성을 중요하게 여긴 반 고흐의 회화론은 고갱의 것과 큰 차이가 있으며 도저히 융합될 수 
없는 요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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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우씨의 성난 고갱과 슬픈 고흐 본문 내용중에서 ..


5살 차이 나는 고갱과 고흐.. 서로, 물과 불처럼 섞이지 못했습니다..


위 그림중,..

고흐가 해바라기 그리는 장면을 고갱이 묘사한 그림에서 다 죽어가는 해바라기에 바늘같은 붓,..

게다가 배경으로 고갱자신의 그림이 위압감을 떨쳐주고 있습니다.


저 그림을 보고 고흐가 느끼는 굴욕감은 대단했을겁니다..


카페 아를에 와서 끊었다시피 했던 독한 술 (입센트)를 다시 마시게 됐고 먹던 술잔을 고갱에게 던지고 

했었다고 합니다. 그에 대한 항의의 표시로 날카로운 눈매로 누군가를 꿰뚫어 보는듯한 자화상을 

그리게 됩니다. (귀 짧리기전 마지막 자화상)


동시대를 살았고 전혀 다른 성격이었지만 교류를 통해 서로의 작품에 영향을 미쳤었고, 떠나는 고갱을 붙잡을

려고 노력했던 고흐.. 


성직자 아버지와 서적상 어머니 덕분에 부유한 환경에서 양질을 교육을 받았고, 집안이 화상가였기에 

그림도 자연스레 접하게 된 고흐와 주식중개인 본업을 유지한채 늦은 나이에 미술공부를 한 고갱..


그림 한점 팔지 않기를 바랬던 이상주의자 고흐와 현실주의자 고갱..


책 읽고 그림 보면 한결 이해가 빠르고 재밌게 느껴질겁니다..


고갱전 한다길래 그런가 보다 했는데.. 글 읽다 보니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다 보니 한번 가야 겠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