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아트리체 첸치 (1577.2 ~ 1599.9)
그림 볼때 관객을 바라보는 듯한 시선처리가 저렇게 그려지면 보는 입장에서는 계속 주시하게 됩니다.
그림속 인물이 아름다우면서 매력적이라면 좀더 그럴거고요.
그에 덧붙여서 저 사람이 기구한 삶의 주인공이었다는 얘기를 들으면 안타까워 하면서 더 뚫어져라 보게 됩니다.
이탈리아 귀족이자 개망나니였던 아버지 프란체스코 첸치
가정폭력과 성폭행에 당국에 신고도 해 봤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자 계모와 친오빠, 이복동생의 도움으로
친아버지를 죽이고 사고사로 위장합니다.
사건의 실체가 드러난 후 시민들이 정당방위를 주장했지만, 교황은 사건 가담자 전부 사형에 처합니다.
<로마 산탄젤로 다리 - 처형당한 시신을 거는 장소로 많이 이용됐다고도 합니다>
1599년 9월 11일 새벽녘에 산탄젤로 다리에 사형대가 설치되었고
처음에 베아뜨리체의 오빠 자코모의 사지가 매달려졌고, 이후 계모였던 루크레치아가 참수, 마지막으로 베아뜨리체가 사형대 위에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탈리아에서 최고로 아름답다는 베아뜨리체의 마지막 모습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상태였는데
모두들 시선을 떼지 못합니다.
20대 초반의 저 아리따운 아가씨의 미모가 얼토당토 않은 판결로 조금 있으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야 한다는 안타까움에 말입니다.
그 장소에 많은 사람들중 귀도레니 라는 화가도 껴 있었는데, 그 모습을 남겨 두기 위해
베아뜨리체 첸지가 사형대에 있는 모습을 화폭에 옮겨 답습니다.
이후, 귀도 레니의 작품을 모사해서 엘리자베타 시라니가 "베아뜨리체 첸치" 작품을 다시 그리는데
엘리자베타 시라니가 귀도레니의 제자라는 말도 있고 그렇습니다.
귀도레니의 그림보다 엘리자베타의 그림이 엄청(!!!!) 슬프게 보이는게 사실인데
전후 이야기를 전해들은 작가가 베아뜨리체의 얼굴에 그 표정을 그려낸것 같기도 합니다.
저 그림을 직접 본다면 저 여인네의 삶이 떠올라서 그림앞에서 한동안 가만히 바라보고만 있을것 같습니다.
혹여나 이태리 다시 가게 된다면 꼭 보고 싶은 그림중 하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