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뜻 보면 창고 겸 살림집 같아 보이기도 한다.
네모 상자 모양 집에 가장 단순한 맞배지붕 하나 얹은 세상에서 가장 단순한, 집이라고 하면 누구나 떠올릴 모습 그대로 지은 집이다. 집 크기도 작다. 평수로 환산하면 저 마루 포함해 21평. 마루를 빼면 13평짜리다. 방 두개, 화장실 하나, 부엌 하나.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마루가 넓을 뿐. 그리고 야외용 저 샤워실 정도다. 공사 비용도 많이 들지 않았다. 저 마당에 나무를 깐 데크와 샤워실 공사비까지 다 포함해 1억원. 건물 자체만으로는 그보다 적게 들었다. 이 작은 집은 일반에겐 알려질 일이 없지만 건축 쪽에선 나름 주목받는다. 그리고 외국 건축 전문 저널에서도 연이어 다뤘다. <아키데일리>, <아키넷>, <디자인 붐> 등 이쪽에선 이름난 저널들에 모두 실렸다.
왜 그럴까? 이 집이 담아내려 한 생각 때문이다. 그러면 어떤 생각을 담았을까? 아주 기본적인 것이다. 작은 집의 가치와 미학이다.
집이란 작을수록 짓기 어렵다. 그래서 건축 전문가들은 작은 집에 매혹된다. 큰 집보다 작은 집이 설계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집이 크면 뭐든지 가능하다. 큰 부엌? 크게 만들면 된다. 특별한 공간? 얼마든지 넣을 수 있다. 하지만, 집이 작으면 이 모든 게 어렵다. 집어넣기는커녕 빼기 바쁘다. 그래서 정말 필요한 공간을 뽑아내야 한다. 이런 작은 집에서 건축적인 어떤 아이디어를 실현한다는 것은 더 어려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진정한 건축 고수는 큰 집이 아니라 작은 집에서 진가가 드러난다. 건축가 에리히 멘댈존은 이런 말까지 남겼다. “건축가는 원룸 구조로 설계한 건축물로 기억된다.” 가장 작은 집은 원룸이다. 이 가장 작은 집을 설계한 것을 보면 그 건축가의 철학과 능력을 판단할 수 있다는 말이다.
저 샤워장 딸린 작은 집을 일단 구경해보자.
정말 단순하다. 긴 일자형, 건축에서 가장 기본적인 꼴이다.
마루는 상당히 넓다. 이 집의 주인은 대안학교 쪽에서 일하는 분이다. 학교 선생님들과 학생들이 찾아올 일이 많다. 마루는 그 회의실 역할을 한다. 물론 손님 맞는 곳이기도 하다. 마루 쪽에서 집을 보면 방 두 개가 가로로 이어져 상당히 깊어 보인다.
마루 지붕에 눈길이 간다. 예각으로 튀어나온 나무 부재 디자인인데, 이렇게 처리하는 경우는 드물다. 어쨌든 가장 기본적인 나무 부재들만으로, 가장 많이 짓는 공법 그대로 쓰면서 그 자체가 디자인이 된다.
마루에 앉으면 진악산이 한 눈에 들어온다. 집이 액자가 된다. 우리 전통 한옥에서 중요한 ‘차경’이다. 차경은 경치를 빌려오는 것. 주변의 경치를 내 것으로 즐기는 방법이다.
마루 현관문을 열면 방이다. 문을 열면 또 문. 그 문을 열면 다시 다음 방이 보인다.
거실 역할을 하는 앞방 다음 뒷방은 부엌 겸용이다. 뒷방 위에는 아주 작은 다락방이 있다.
문을 다 열면 이렇게 된다. 네모꼴 프레임 안에 다시 네모꼴 프레임이 연이어지는 이 중첩되는 모습. 우리 한옥의 특징이자 매력이다. 문이자 창인 창호가 벽도 되고, 그 벽이 열려 접혀 사라지면서 방과 방, 방과 마루가 하나로 이어진다.
건축가의 설명을 들어보자. “우리는 건축을 시작한 이래 20여년 이상 과연 한국건축의 본질은 무엇인가 끊임없이 고민해왔다. 일본이나 중국의 건축과 다른 한국 건축의 가장 큰 특징은 공간이 움직인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건축은 이를테면 정지된 화면이 아니라 동영상처럼 공간과 공간 사이로 끊임없이 흐름이 있다. 그리고 내외부의 방들은 그 흐름을 자연스럽게 따라가며 빛과 바람 같은 자연의 요소들이 지나가는 흔적을 담는다.”
이젠 방 안에서 마루 쪽을 본다. 문이 다 열리니 커다란 방 하나가 됐다. 모든 공간이 통하니 건축가의 말대로 빛과 바람이 집 전체를 관통한다. 한옥만이 보여주는 장면이다.
안쪽 방의 작은 다락은 이 집의 매력 포인트다. 작은 집이어도 나름 서재로 쓸 수 있게 다락을 활용했다.
부엌 입구에 다락으로 가는 사다리를 달았다. 올라가면 작은 다락방이 나온다. 다락방 모습.
이것으로 집구경 끝.